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부치 게이조 (문단 편집) === 식은 피자에서 근성의 총리로 === [[잃어버린 10년/일본|당시 일본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오부치는 관방장관과 외무대신 등 경제와 별 관련없는 부처를 거쳤기에 경제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고[* 전임 총리대신인 [[하시모토 류타로]]는 경제관계 대신직 중 최고 요직인 통상산업대신과 대장대신(現 재무대신)을 거쳤다.], '''"3일이면 오래 간다"''', '''"식은 [[피자]](冷めたピザ)"''' 등의 [[별명]]으로 여론으로부터 전방위로 불신을 샀다. 미국 뉴욕타임즈 98년 7월 13일 기사 [[https://www.nytimes.com/1998/07/13/world/fresh-faces-are-few-for-top-job-in-japan.html|Fresh Faces Are Few For Top Job In Japan]]에 존 뉴퍼[* 일본 영사관에서 일하거나 일본의 한 연구소에서 지내면서 정치 관련 뉴스기사를 송고하기도 한 인물.]의 코멘트가 실렸는데, 그 중 "Obuchi has all the pizzazz of a cold pizza(오부치는 식은 피자 정도의 활력/매력이 있을 뿐이다.)[* 보면 알겠지만 pizzazz 와 pizza로 말장난을 유도했고, 존 뉴퍼 본인 스스로도 단순히 glib comment였다고 하는 등, 이렇게 일본에서 논란을 불러올 지 몰랐다고 한다. 존 뉴퍼는 이 일로 일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가 일본 정치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는 둥, 존 뉴퍼가 대체 누구냐는 둥 비난에 시달렸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이것이 일본 내 언론에 확대 재생산 되면서 식은 피자라는 별명이 유명해진 것. 이에 오부치는 출마 회견에서 '''"[[멘탈갑|식은 피자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따뜻해진다]]"''' 라고 맞받아치고, 98년 7월 18일 저녁 그의 집 앞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따뜻한 피자를 돌리며 자신이 식은 피자가 아님을 강조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방송에서 "레인지로 데운 피자는 맛이 없다."며 물고 늘어져 피자 논쟁이 이어지기도. [[파일:attachment/오부치 게이조/obuchi-pizza.jpg]] 이 일화로 [[1998년]] [[타임(주간지)|타임]]지에 [[피자]]를 들고 있는 사진이 표지로 선정되는 위엄(?)을 달성하기도 했다. 오부치는 '''"인기의 [[하시모토 류타로|하시모토]], 실력의 [[오자와 이치로|오자와]], 인품의 [[오부치 게이조|오부치]]"'''라는 말처럼[* 원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비롯된 말로 [[센트럴 리그|인기의 세-리그]], [[퍼시픽 리그|실력의 파-리그]](人気のセ、実力のパ)가 원본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 온화한 인품과 특유의 근성으로 이런 위기를 돌파했는데, 대표적으로 각계에 전화를 걸어 의견을 수렴하는 등 '''경청'''하는 자세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결국 재임기 별 탈없이 원만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평으로 바닥을 치던 지지율은 후반기에 50%를 돌파하게 되면서 총리로서 평판을 높이게 되었다. [[http://me2.do/Go6JtX8b|관련 영상]]. 또한 경제통이자 [[미국]]통인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에게 대장대신을 맡도록 설득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이때 했던 정책이 대량의 감세와 "국채 팔기" 정책. 물론 훗날 이 국채 팔기 정책이 빚더미 [[일본]]의 기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일본 국채 자체가 자국민들에게 파는 국채가 많아서 재정적으로 아주 심각한 부담은 되지 않았단 의견도 있으며, 어찌 됐든 당시엔 급한 불은 껐다. 그렇게 경제 위기를 돌파하면서 결국 식은 [[피자]]라는 비아냥에서 시작했지만 오부치 폰으로 대표되는[* 짬날 때마다 아무에게나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던 전화광이라 붙은 별명.] 근성의 총리라는 평가를 얻는데 성공한다. 1998년 11월엔 23조엔 규모의 긴급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는데, 이때 실제로 국민들에게 현금성 상품권을 배부하기도 했다. 약 3,500만 명에게 '고향쿠폰'이라는 상품권을 배부하는데(대상자 1인당 2만엔 꼴) 여기에 실제로 7천억엔이 소요되었다. [[하시모토 류타로]] 정권 시절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다시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youtube(MWrsEIW_AYg)] 사망 직전인 총리 집권 마지막 해인 2000년 모습. [[오키나와]]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혹자는 오키나와를 생각해준 마지막 리더라는 평까지 할 정도. 강력한 진흥정책과 [[2000년]] 제 26차 [[G8]] [[규슈]]-[[오키나와]]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이 대표적이다. [[슈리 성|슈레이몬]]이 그려져 있는 [[2000엔권 지폐|2천 엔권 지폐]]도 이 시기에 발행한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